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동기 시대 (문단 편집) === 후기[* 만약 전기 철기 시대를 청동기 시대에 포함시키고 무문토기 기원전 15세기 발생설을 따른다면 중기가 된다] === * [[부여군]] 송국리 유형: 무시설식 노지의 원형 또는 방형의 돼지콧구멍 기둥 자리가 있는 주거지로 외반구연의 장란형 토기(쉽게 말해서 [[계란]]처럼 생겼는데 입구 부분이 벌어진 토기)로 대표된다. 이 유적의 집자리는 도무지 이전 청동기 문화 양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화덕이 사라져버려서 한국 청동기 고고학 최고의 미스터리 문화로 관심이 집중된다. 현재 외래 유입설과 자체 발생설이 논쟁 중인데 어느 쪽도 확실한 증거가 없어 논쟁만 계속되고 있다. 송국리 문화는 후기를 대표하지만, 이 시기에 [[남한]]에는 북한강의 천전리식 주거지와 [[울산]]-[[포항]]-[[경주시|경주]] 지역이 검단리 유형이 나온다. 당연히 [[북한]]에는 송국리 유형이 현재까지는 발견 례가 없다. 게다가 미사리, 가락동, 역삼동-흔암리, 송국리 유형 등의 구분도 남한 기준이고 북한 쪽은 공귀리, 서포항 등 그쪽만의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남한과는 구분 방식이 다른 경우도 있어 전체적인 이해는 좀 복잡해진다. 그러나 송국리 문화는 본격적인 도작 농경(쌀농사)을 시작한 문화로 보고 있는데, 이들 문화의 파급력은 상당해서 [[춘천]]-[[홍천]] 등 북한강 일부 지역과 울산-경주 등 영남 동부 해안 지역 일부 제외하면 남한 전 지역과 [[제주도]], [[일본]] [[규슈]]까지 퍼진 문화다. 특히 이들은 일본 야요이 문화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실제 규슈 지역에서는 송국리형 집자리가 발굴되었고, 일본 도작 문화 전파 루트에 나타나는 옹가가와식 토기는 송국리식 호형 토기를 모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파일:attachment/청동기 시대/7.jpg]] 송국리의 원형 집자리 [[파일:attachment/청동기 시대/8.jpg]] 송국리식 토기 [[파일:attachment/청동기 시대/9.jpg]] 일본 야요이 전기의 옹가가와식 토기. 송국리 호형 토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구연부가 단이 지면서 외반하고, 조몬 토기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그려져 있어 약간은 변형된 모습을 보인다. 호형 토기는 도작농경이 발전하면서 도입된 걸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